13일

기억나는건... 비행기 속에서 봤던, 층층이 겹친 구름들과.. 그 위에 파랗기만하던 하늘의 색.
너무나... 파랗던.

그동안 여행중에 노트에 남겼던 기록을 여기 옮긴다.
그때엔 급하게 써 대느라 어색하고 말이 안되게 쓴 것도 많지만...
가능하면 거의 그대로 옮길까 한다.
알아서 이해하시라. -_-;

...

비행기 날개가.. 바람을 받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움직인다는걸 처음 알았다. [...]
정말 아름다운 한국의 하늘. 과.
열라 단 기내 오렌지주스 =_=;;

...

긴장. 긴장. 머리가 터지기라도 할 듯. 긴장된다.
착륙하는 도중이라 귀도 졸라 아프다. ; (홍콩 빅토리아 공항에 착륙하는 도중이었음)
하필이면 비가 오는 날씨라. 여긴 구름이 정말 낮게 깔린다.
희한한 사람들. 희한한 것들. 멋지다. 이것이 여행인가.
돈이 엄써서 구경만 다녔지만... 쩝.
발맛사지 서비스가 공항에 떡 버티고 있는 광경이나, 웹브라우징과 E-mail 컨택이 가능한 전화기(신용카드로 결제하게 되어있더라) 따위나, 이제는 전혀 볼 수 없는 한글로 된 표지판. 진정 외국의 하늘인게다. 아아.

계속 굳이 한국말로 "주스드실래요?"라고 물어봐준 이뿐 스튜디어스 누님께 감사를 T.T
"어륀쥐우스" 발음에 맛이 갈 뻔 하다가 겨우 "오렌지주스"라고 말해도 되는 상대가 있는 상황은... 아아. 살거같아.

이국의 하늘은 구름조차도 틀린 것만 같다. 아름답다. 정말.

카지 히로유키상. 놀아줘서 고마워요.. 욜라 심심했어요... ;
근데 홍콩에 6개월 박혀있으면 정말 자기나라 말도 잊는걸까 ;
"니혼고모 헤타, 에이고모 헤타"라는 말에 자기는 일본어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는 제스처를...; 딱딱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인걸까.

...

(PM 6:30)
태국에 짱박혀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태국 비자요건이나 여행조건 좀 알아둘것을... 역시 이코노믹 클래스의 힘이란건 이런 것이었던가... 띠바. 머리 어지러... 기절하겠다.
그나마 이쁜 여자가 여기저기 눈에 띄어 다행이다. 랄라라. [...]
11시 45분이니까 다섯시간 10분'만' 더 기다리면 되겠군. [...] 아무래도 프랑크푸르트 뱅기 기다리는 사람은 여기 나밖에 없는거 같아...; 아아... 또 머리가 아파온다...;

...

(PM 9:05)
아직도 방콕에 콕. 박혀 있다. 정신상태는 양호. 하지만 졸라 춥다... 띠바 나는 긴 청바지에 긴 티까지 입었는데 어떤 것들은 반팔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돌아댕긴다...;
면세점에서 1달러에 몇바트(태국의 화폐)냐고 물어봤다가 '사지도 않을거면서 뭘 물어봐' 눈빛 공격에 데미지를 입었다. 망할뇬... 평생 공항에서 장사만 하다 주거라! -_-凸++ 41바트. 30원이 조금 안되는군. 앗 그럼 아까 사탕 한봉다리에 600원!? (면세점에서 20바트짜리 두리안 비스무리한 과일이 그려진 사탕 봉다리를 봤음)
발맛사지 센터는 홍콩도, 여기도 있네... 왜 우리 나라엔 없지? 웬지 '음성적'으로 보이기 때문인걸까. 여기엔 스포츠 마사지 센터도 버젓이 있두만.
그나저나, 말 알아듣기도 힘들고, 불친절함도 눈에 보이고, 약간 짜증. 한번 들으면 타이 말이고 두번 들어야 영어로 들린다. 내 귀가 이상한거냐, 이거뜰이 이상한거냐... 억양도 이상하고 발음도 이상하고... 하긴, 그넘들에겐 나도 마찬가지겠다;

...

(PM 10:50)
...거의 맛이 갔다. 시차 탓은 아닌 것 같은데... 머리가 내머리가 아닌 것 같아... 사람이 없다가 많아져서 그런가...
서양 뇬이라구 다 가슴이 큰건 아니다... 그러나 푸른 가슴, 아니, 푸른색 쫄티 입은 누님의 가슴은... T.T 아마 어디 절벽에서 떨어져도 저 쿠션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거야...;

어렸을때부터 이런 걸 보고 자라니까 예술감각이 자라나는거지 -_-+
이제 일정표 정리하고. 대강의 예산 써 보고.

내일모레로구나...

어렸을 때 소풍가는 전날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아아. 욜라 긴장된다.

...

오후 한시 반.
가을이 언뜻 비치는 푸른색 여름 끝자락의 하늘 아래서,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자전거를 타며 흘린 땀을 식히고 있었다.
식수대가 보인다. 버튼을 누르고. 수도 꼭지의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비친 햇빛을 바라본다.
기분좋은 토요일, 주말의 오후.

그러나 그 식수대 밑에는.
식수대에서 흘러내려 고인 물의 수면에 갈기갈기 찢겨진 병아리의 시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ひよこちやん. わるい.

네게는 기분좋은 토요일의 오후따위는 없구나. 미안...

...

결국 무대에 서 버렸다.
물론 큰 무대는 아니었다만... 스스로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때까지는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쨌든... 솔로로, 공권력 -_- 에 영향받지 않고 최초로 서게 된 무대인가.

무대 위에서의 떨림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나마 예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다.
수명이 줄어드는 듯한 끔찍스런 느낌은 더이상 들지 않는 것 같으니까.

여전히, 다른 이에게 뭔가를 보여준다는 일은 내게는 두려운 일인가보다.

...

새로 도착한 프리윈디 오카리나 G키. 소리가 시원하게 잘 빠진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십중일은 될 만한 수준이군.

...

이토 준지 공포만화 모음집.
시간날때 읽어야 할 책 목록에 포함시키시라.

작화는 엉망이지만... 공포만화도 이정도면 예술이다.

여행 7일 전인데 오다니... 너무한거 아냐? -_-;

잠시후... 웬 여자가 자전거 보관소 구석탱이로 뛰어와서 훌쩍거림. 약간 취한건지 맛이 간건지 분간이 안감.
자전거와 우는 여자. 짜증 레벨 상승.

한참 훌쩍이던 여자, '아저씨..' 하면서 부름.
짜증나는 목소리 -_- 게다가 아저씨 -_- 쌩깜.
접근해오더니 '아저씨.. 화장실이 어디에요?' 역시 짜증나는 목소리. 짜증나는 면상 -_-
나보다 한두살은 많게 생기셨구만 -_- 아저씨라니.
자전거의 록을 풀면서 '역안이요' 퉁명스럽게 대답.
'뭐라고요?!' 앙칼진 대답.

움찔 -_-

상황파악 -_-a
난 '역안이요'라고 짧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역안이요역안이요역안이요...
음.
이뇬.. '여관이요' 라고 들었나보군.
어떻게 그걸 여관이요라고 들을 수가 있지?
사상이 불순한 뇬 가트니 -_-+
상황파악 끝. (여기까지 0.5초) -_-/

'역, 안이라구요. 아.줌.마.'
난 그렇게 대답하고, 앞바퀴에 바람빠진 자전거를 밀며 유유히 사라졌다.

You win -_-d

...

항공권 발권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9일.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