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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시간동안 전에 생각해 둔 가사를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만한 곳, 내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그런 장소를 찾는다고 한다면 역시 시청 도서관 뿐. 이곳은 카페라든가 커피숍이라든가 그런 종류의 장소를 찾기가 쉬운 지역이 아니다. 게다가 만약 그런게 있다고 해도 십중팔구 시끄러운 음악, 버글버글한 사람들, (혹은 무척이나 장사가 안 되는 집이라면) 주인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잡담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저런게 다 없는 카페라고 해도 매일 들를 수는 없으리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집을 나서자, 하늘은 비를 머금기 시작한, 엷은 푸른색이 도는 회색의 구름으로 온통 덮여 있었다. 이글거리지는 않지만 걷고 있노라면 땀이 슬그머니 맺히기 시작하는, 그런 7월의 날씨였다.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발걸음을 옮겨, 그저 멍한 상태로 도서관을 향했다. 20여분이 되는 거리를 걸어 도착한 도서관 앞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 '도서관은 금일 휴무입니다.' 뭐, 이런 식이지, 라고 중얼거리며 최근의 연쇄불운사건들에 뭔가의 규칙성을 찾아보려고 시도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보내게 되겠지만, 불운이나 행운에는 규칙이 없다. 그건 여자의 변덕 같은거야. 불운의 규칙성을 찾아내겠다는 생각 따위는 쓸데없는 생각들 중에서도 정말 쓸데없는 최악의 생각이 될거야. 오늘은 그냥 맘 편하게 있는게 좋아. 훈련소 입소 20시간 전이라구. 중얼중얼.

중얼거리며,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 상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별볼일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지만, 극장에 걸린 영화들은 내 별볼일 없는 하루보다도 더 별볼일 없는 것들 뿐이었다. haze를 기다리며 혼자서 영화라도 하나 볼까. 하는 생각은 이내 접었다. 영화 때문에 우울해진 얼굴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평소의 어색해보이는 표정이 나을 것 같다. 그럼 결국 가사를 다시 완성하러 가봐야겠군. 어디가 좋을까. 문득 까르푸의 식당 코너가 떠올랐다. 여기 근처의 까르푸는 창고형 수퍼마켓 매장인데도 내부에 식당 코너가 있어서, 이것저것 쇼핑을 하고 나서 밥을 사먹거나 그냥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 놀이방 쪽 위치만 피하면 그다지 시끄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상 까르푸에 도착해보니 - 식당 코너는 없어지고 말았다. 식당 코너에는 생소한 의류 브랜드점-그것도 중저가형이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과 만화, 게임 소프트를 파는 가게, 신발 가게가 들어와 있었다. 추측으로는, 까르푸가 별 장사 안되는 식당 코너를 유지하느니 저런 가게를 유치해서 임대료라도 받는 쪽을 택하지 않았을까. 라고 이해하기는 했지만, 벌써 세 번째다. 연쇄불운이란건 끝내 언제까지 날 붙들고 있을 것인가.

결국 난 시끄럽고 딱딱한 의자와 기름 냄새,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멍청한 얼굴들이 가득 들어찬, 게다가 도서관이 휴무일일 때에도, 극장에 별볼일 없는 영화가 걸려도, 까르푸의 식당 코너가 사라져도, 심심한 까페 주인들이 몇 찾아오지도 않는 불쌍한 손님들을 귀찮게 할 때에조차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맥도날드에서 애플파이를 씹으며 hpc의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이런저런 소리와 가끔씩 날아드는 시선을 애써 참아내며.

자꾸 팔에 무엇인가가 달라붙는 느낌.

여치의 날개같은 녹색 빛 옷감을 가슴에 두른채 걷고 있던 아가씨. 그 가슴에 손을 대면 보랏빛 곤충의 체액이 스며나올 것만 같았다. 은행 입출금기 앞에 서서 기계 안으로 카드를 밀어넣고 있는 순간, 들려온 매미의 울음소리.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의 시작. 현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가는 거리에서, 깊고 어두운 땅을 파고 나온 작고 더러운 곤충은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