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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빠져나온 전철 안으로 비를 머금은 회색 구름의 어스름한 빛이 닿았을 때, 순간 정신이 들었다. 전철 좌석 위의 손잡이를 잡은채로 - 잠시 잠이 들었다 깬 것처럼 - 내 시야에 들어있던 물체들이 나의 의식 안으로,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인식의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차츰차츰 내가 전철을 타고 향하던 행선지로부터 내 의식의 경로를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느려서 일을 할 수 없을지경.

트래픽 단속 좀 하세요 제기랄..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거란 생각은 버린지 오래.

하지만 아직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은 버릴 수가 없어.

그것마저 잃어버리면 타인과의 의사소통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게 될 것만 같아서.

간만에 영화관 좀 와줬더니만..

아무리 주말이라고 해도 23:50 타임에 빈 좌석이 5석 밖에 안 남는 경험은 처음이도다;

홀리데이를 기대하던 사람들이 일케 많았던게야.. 아니면 연휴라고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던게야 'ㅅ') =3

저녁을 거르고 혼자서 꼬냑 글라스 반 잔을 원샷. 그리고 다음날의 아침.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런 기분이었구나.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07265

가끔 이런 기사 읽는 재미에 오마이에 간다.

네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네가 나에게 무엇인지.

내가 너에게 무엇인지.

회사 근처에 식당이 없어서

아침부터 칼로리바란스 씹고 있는 센스라니 -_-;

아침의 출근 대열에 합류하며

세상이 지옥에 가까워짐을 느끼다.

다시 한 번 정신의 가속을 느끼기 위해서.

나는 지금 mcp(Microsoft Certified Professional, Microsoft사의 자사 제품에 대한 자격 인증 시험)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이다. 시험 결과는 합격. 점수가 700점을 넘어야 합격인데 내 점수는 정확히 700점이었다. 쉽지 않았던걸까. 영어로 된 문제는 글자가 아닌 이미지로 머리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고, 그 전날 잠을 조금 자고 시험을 친 까닭인지 머리가 멍하다. 시험의 이미지는 멍한 그 상태로 떠 다녀서 그 난이도란게 어떤건지조차 알기가 힘들다. 멍하게 퍼져나가는 담배연기에 난이도 따위는 없는 것처럼.

내 영혼을 비집고 나온 날카로운 가시 끝에서는 은빛 액체가 흘러내려.

매끈하게 맑은 은빛에서 이윽고 탁한 은백색으로 굳어가는 영혼의 체액에

너의 손을 휘저어 그 안에 있을 너의 안식을 찾는다.

그래서 휘저어진 은빛에서 일어나는 계란 흰자의 거품. 굳고 더러워져 슬퍼하며 깨져버려.

안식을 찾아 휘젓는 나이프와 포크. 영혼은 한낱 한 조각 고기가 되어 찢겨지고 먹혀 배설되고.

끝끝내 소화되지 못한 덩어리의 남은 조각으로 된 생명은 구토하며 내달린다.

왜 이 시험을 봐야 했는지 이유를 생각했다. 분명 어떤 자격 때문이었다. 아. 강사. 이 시험은 내가 나중에 강사 자격을 얻기 위해 필요한 절차들 중 하나였다. 강사.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내 머리를 열어 일련의 지식을 꺼내고, 그것을 텍스트와 이미지와 나의 언변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누군가의 눈과 귀로 입력하고, 최종적으로 나의 지식(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게 '나의 지식'이란 표현을 쓸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과 누군가의 지식을 동기화시키는 일.

처음으로 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분명 '가르치는 일이 즐거워'라든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와 같은 생각을 하진 않았다.

'내겐 꿈이 있어.'라는 말이 '너와 자고 싶어.'라는 말보다 부끄러운 말이 될 때쯤에.

그 전에는 죽을거야.

대체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야 여행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사라는 직업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걸까. 머리 속의 단어끼리 연결이 엉킨 것만 같다. 어두운 색 정장에는 검은 양말. 내 머리 속의 여행과 강사는 검은색의 정장 바지와 흰 양말의 하모니처럼 흔들린다.

나는 부서졌다.

너는 나의 전부가 아니었는데도.

생각의 출발점을 잃고 부유하는 목표들. 그리고 마구 어질러진 책상 위의 서류같은 오늘의 할 일. 전철 안에서 떠밀려 회사로 향하고, 회사에서 일에 떠밀려 컴퓨터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두고, 방향을 잃은 본능같은 감각은 단지 뇌에 일정한 자극을 주는 텍스트와 이미지로 디스플레이의 픽셀 하나하나에 나의 의식을 떠밀고. 끈이 풀린 부표처럼 파도에 떠밀려 어디론가로 멀어져가는 의식을 붙잡아야.

손에 힘을 주어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어지지 않는 생각의 가닥을 붙잡듯이. 하지만 생각은 미끈거리는 물고기의 외피마냥 움켜쥔 손을 빠져나간다.

호흡을 잃었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이라기보단 낙서에 가까운)을 계속해서 쓰는 것을 그만둔 뒤로 2년인가가 지났고, 지금은 뭔가를 적기 위해서 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쓰고자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고, 그나마도 뭔가가 듬성듬성 빠진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카락같은 문장을 적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래선 안 되겠다. 는 생각에 매일 조금이나마 문장을 적어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한참동안 쉬던 조깅을 다시 시작하면서 뒤틀린 호흡을 가다듬듯, 신선한 공기를 들이쉬어 몸 속 구석구석의 혈관에 산소를 밀어넣듯.

아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쓸(곡이나 가사나 글이나 모두 '쓴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라는게 이럴 때는 조금 불만이다. 시의 경우처럼 '짓다'같은 표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획도 없고, 써야할 것들이 잔뜩 쌓여서 목 뒤가 간질간질한 상황도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준비해두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그것'이 찾아와 내 마음 어디인가의 문을 두드릴 때 문 앞으로 달려나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윽고 그 생각은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되어 내 머리를 때린다.

하루키의 말대로 내가 만든 것이 멋질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게다가 나는 하루키만큼 낙관적이지도 못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억울할 것 같다. 가스실에 갇힌 익명의 유태인만큼이나 억울해하면서 죽어가지 않을까 싶다. 문을 열자. 숨을 쉬자.

가스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시간은 항상 부족할거야.

곡을 쓰는 시간도. 사랑할 시간도. 글을 쓰는 시간도. 공부를 하는 시간도.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도.

그러니까 무엇 하나 흘려버리지 않도록. 순간순간이 소중하도록.

알바하러 가서 버벅거리는 직원덕에 짜증나고, 퇴근하는데 전철 고장나서 열받고,

주식은 폭락에, 날씨는 졸라 춥고, 배는 고프고, 너는 우울해하고,

역시 안하던 일을 하려니 씨발스러운겨 ' ') =3

그 여자아이는 조제가 아니었어.

내 등을 어루만지고 싶었던건 아니었어.

그게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던거였어.

그 여자아이에게 호랑이따위는 없었어.

어느 날 그녀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넌 정말 눈치가 빨라.'

'내가 그걸 느낀 건, 너를 정말 좋아하게 된 때였던 것 같아.'

그녀는 걸음의 호흡을 한 박자 늦추고, 시선을 구두 끝에 잠시 두었다가, 그 시선을 미끄러뜨리듯 정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넌 내게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조각난 달치즈케이크.

치즈케이크 먹고싶다... ' ')

돌아오지 못할 곳 까지 가버린다고 해도...

아니 이런 미친놈의 시간을 보았나.

이건 반칙이야 반칙 엉엉...

뭘 원하는걸까?

겉만 보고 즐겁게 사는 것 같다라느니 부럽다느니 지껄이는 녀석들.

여행. 확실히 목표는 여행이었어. 강사가 아니라. 그리고 음악. 하늘. 구름. 자전거. 경비행기. 방학. 그때서야 강사가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대학 교수였어. 맞아. 손대기도 어려운 문제를 어디선가 잔뜩 들고 와서는 학생들을 괴롭히면서 싱글거리는 스타일의 그런 교수. 방학이 되면 늘 어딘가로 사라져버려서 학기말에 학점이 발표되고 나면 연락조차 안 되고, 그 다음 학기의 첫 수업에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쓰고서는 호치민 얘기로 강의를 시작한다던가, 아니면 하노이 탑 얘기를 꺼내겠지. 이번 수업의 첫 과제는 하노이 탑 알고리즘이에요.

그리고 음악. 가장 더운 때와 가장 추운 때에 집 어딘가에 숨어있을 방을 만들고, 곡을 쓰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어딘가의 대륙에서 경비행기로 시선이 닿는 사방의 끝이 지평선인 하늘을 날고. 18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 기진맥진한 날의 밤에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어지러운 잠에 빠지고.

방구석에 숨어 자기위안에 열올리며 부러움을 말하는 주제에.

눈과 귀로 쫓는 것이 단지 따분한 삶에서 벗어나는 수단인 주제에.

스스로 발 끝을 문 밖으로 내딛어 진짜 사람과 섞여서는 부서져버릴까봐 전전긍긍하는 주제에.

얼마나 많이 웃고 울고 찡그리고 미소짓고 눈물흘리고 소리지르며 부수고 뒹굴어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지. 자신의 표정을 찾을 수 있는지. 자신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지.

지금까지는 단편적인 생각과 이미지와 단어의 모임뿐이었던 - 그리고 아마도 현실을 견디기 위해 꾸며내야만 했던 - 것들을 조금 더 다듬어야만 한다. 아니,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목표. 성취해야 할 것들. 내가 해내지 못한다면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들. 내가 나에게 존재의 이유를 부여할 수 있을 그 어떤 것을.

쉽게 짓는 표정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배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시작의 끝에서 어지러운 잠에 다시금 빠져들 때, 이루지 못한 것에 억울해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