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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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를 손에 쥐면 곧 싫증을 내고 던져버리는 아이처럼... 
 
   그렇지만 그런 성격이란건.. 
   정말 부족함 없이 자라서 
   싫증낼만한 것이 널린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있겠지만. 
 
   난 어떤 것에도 집착하면 안됐었으니까.. 
 
   그게 어떤 것이더라도.. 
   감정의 형태이든.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든. 
 
   어느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는걸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았던 탓일거야. .# 
 
 
#. 그렇게.. 전전긍긍해서 
   기억의 조각만을 꼭 쥔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아이는. 
   아무리 매달리고 애걸해도 
   되돌려받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이해했고.. 
 
   어떤 것을 손에 쥐기 전에 
   놓는 것을 먼저 걱정하는 아이가 되어갔지. 
 
   그랬어..                                                           .# 
 
 
#. 물건 하나하나를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감정과 기억의 한 조각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어. 
 
   그리고 너무 억울했지만.. 
 
   그렇게 뭉쳐진 감정과 의식의 덩어리로 내가 되었으니까. .# 
 
 
#. 나이를 스물다섯개나 처먹은 오늘에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나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었던걸까... 하고.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고.. 그렇게 얘기했었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최대한이야. 
 
   여기까지야. 
 
   지독하게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우울함만큼이나 나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짜로 만들어낸 나를 뒤집어쓰고 거리를 걷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일을 하고. 
   심지어는 가족한테까지도 애써 우울한 나를 감추고. 
   (하긴.. 이런건 가족한테 내보이는게 어쩌면 가장 힘들지도)       .# 
 
 
#. 갑작스러운 네 태도의 변화에 당황했었어. 
 
   너도 그런 사람을 원한다고 생각했거든. 
   손에 잡히지 않은 채로.. 언제든지 놓을 수 있는 상대. 
   미움이나 상실의 감정에 대한 대상은 틀리지만 
   우린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실이 끊어지는 짧은 한 순간 같은 시간. 
   감정의 폭발에. 
   얼마나 스스로 두려워하고 자기모멸에 빠져있었는지.. 
 
   서로 그런건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 
 
 
#.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거절의 말이 아니니까.. 
 
   다만... 
 
   이제는 100%의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내 생명을 걸기라도 한 것처럼 사랑하지는 않을거야. 
 
   아니. 
   그 사람이 100%라는 것을 믿지 않는 쪽이겠지 [웃음] .# 
 
 
#. 하긴..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아마 너도 그냥 날 떠보려는 거였겠지? 
 
   진심이 아닐때 그렇게 말하지 마.. 
   진심이어야지 나도 진심으로 대할거 아냐 [웃음] .#          kenial. 

-- 오후 3:30 2003-05-09